7년 8개월간 근무한 제 첫 직장인 삼성SDS를 떠나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합니다.
먼저 저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적극 지지해 준 아내와 부모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작년에 결혼 하고 올해 첫 아이를 기다리는 입장이라 안정적인 대기업을 떠나는 것에 대해 고민이 있었지만 결정하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하고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아 좀 길어질 것 같지만 그 동안 마음에 있던 (몇몇 분들에게는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볼까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우연하게 만난 사람에게 영감을 받아 결심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되며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정말 알 수 없기에 인생은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스타트업에 대한 첫 생각은 2011년 코스타리카 출장 중에 갖게 되었습니다. 그 때 결심한 일이 지금 시작하는 일과 같은 일은 아니지만 그 때 이야기부터 풀어놓아 볼까 합니다.
코스타리카 한인교회에서 만난 한 청년이 있습니다. 재미 교포 출신의 친구였는데 코스타리카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온 열정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친구였습니다.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제가 컴퓨터쪽 일을 한다고 하니 저에게 평소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놓습니다.
어떻게 컴퓨터서 화면이 나오는지. 어떻게 데이터들을 저장하는건지. 소리는 어떻게 나오고 통신은 어떻게 하는건지. 지금은 너무나 우리 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아무도 궁금증을 갖지 않는 그런 기반 기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무척이나 궁금해 하는데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주변에 같이 궁금증을 갖는 사람도 없어서 참 답답했다는 것입니다. 2진수 방식과 각 컴퓨터 부품이 I/O 처리하는 일들, 코드/디코드 등의 신호를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해 주고 나니 마치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는 듯이 얼굴이 환해집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아무한테나 이야기하는게 아닌데 형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형한테 얘기한다고. 20년 후 내가 나이 40이 되면 우주와 관련된 이러이러한 사업을 하려고 한다. 그 때쯤 되면 그런 일들이 많이 활성화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경영학과를 전공하지만 천문학이나 우주과학도 같이 공부 하면서 공군으로 복무도 하려고 한다. 아마도 집안 사업을 물려받을 것 같은데, 20년 후 이 일을 위해 그 사업도 언제까지 하고 정리해야겠다.
그러면서 저한테 얘기합니다.
“형, 나 형 마음에 드는데 나랑 같이 일 합시다. 형 삼성에 있기 아까운 것 같아요.”
순간 머리에 뭔가 한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 들었습니다. 나랑 띠동갑 차이가 나는 이제 갓 성인이 된 친구가 20년 뒤의 포부를 당장 내일 할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고, 당돌하게 나를 스카우트 하려 하다니. 제일 먼저 제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르더군요. 그리고 한국에서 코앞의 입시만 바라보며 공부하는 고등학생들과 대학에 왔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매달리는 20대들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때 저도 결심을 했습니다. 한국 교육에 대해, 한국 청소년들의 미래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난 교육자는 아니지만 청소년들이 비전을 꿈꾸고 노력하는 일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무런 꿈도 꾸지 못하며 힘들고 바쁘게만 사는 친구들이 지금 이야기 나눈 이 친구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마침 한국에 청소년 비전에 관한 일을 지금 하고 계시는 친한 분이 계셔서 한국 돌아오자 마자 그분을 만나 코스타리카에서 만난 그 친구의 이야기를 해 주고 저의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그 분도 필요성을 느끼던 차에 그 친구의 열정에 감동하고 함께 어떤 일들을 해 나갈 수 있을지 하나 둘씩 정리 해 보았습니다.
저를 잘 따르는 주변 동생들에게는 눈 앞의 상황에만 조급해서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찾아보라고 하면서도 저는 막상 대기업에 눌러 앉아 일하며 이런 이야기 하는 것이 무엇인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이 직장에 왔을 때는 저도 제가 원하던 일이었고, 많이 감사하게 생각을 했으나, 몇 년간 조직의 한 톱니바퀴로만 굴러가면서 많이 무뎌지고 했던 차에 저도 제 인생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부터 스타트업에 대한 정보도 찾아보고 책도 사서 읽어보고 세미나도 찾아 다녀보며 준비를 했습니다.
마침 지금 우리나라 환경이 1999년 닷컴 이후 두번째 벤쳐 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창업 열기가 후끈합니다. 정부에서도 많은 예산을 들여 창업을 지원하고 있고 지금 환경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올해가 거의 끝물인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스타트업 위크엔드라는 행사가 있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첫 날 다음 창업자인 이택경 대표의 강연에서 스타트업의 환상을 깨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젊은 열기에 아무런 기술력 없이 무턱대고 창업하려고 하면 백프로 망한다. 자금이 중요하고 VC(Venture Capital) 들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아무리 아이디어가 뛰어나도 소용 없다. 실제 프로덕트가 나와 작은 돈이라도 수익을 내고 있어야 VC 들이 투자를 한다. 창업은 취업이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회에서 일을 계속 하며 경험과 기술을 쌓다가 나의 모든 인생을 걸고 뛰어들어도 아깝지 않은 일을 만났을 때 하는 것이 창업이다. 그리고 혼자 창업하는 것 보다 믿을만한 파트너 둘 이상이 같이 하는 것이 좋다. 창업 멤버 중 엔지니어 출신이 있으면 더욱 좋다.
참 신기한 것이,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바로 지금이다, 라는 확신이 더해져갔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시작할 멤버가 마침 그 일에 대한 업계의 전문가와 (J코치님) 엔지니어(저) 였으니까요. 아직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자금(?) 그리고 창업에 대한 경험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운명이란 것이 있는 건가 싶습니다. 스타트업 위크엔드에서 첫날 팀 빌딩을 하고 2박3일간 합숙을 하며 프로젝트를 진행 하는데, 마침 제가 합류한 팀의 팀장님이 지금 막 자신의 스타트업을 시작하신 분이었습니다. 기업에서 연구직 업무를 수행 중이었는데 자신의 업계에 이런 일을 하면 수익이 꽤 날 것 같은데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고 필요성은 대두되고 있는 일이 있길래 본인이 해 보려고 직접 뛰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필요한 대부분의 기초적인 것들은 갖춰졌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을 아직 못 구해서 혹시라도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같이 프로젝트를 수행 하면서 저도 그렇고 그분도 그렇고 며칠만에 서로 일하는 스타일이나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이 비슷하고 잘 맞는걸 느꼈습니다. 다른 팀원들도 다들 열심히 즐겁게 해서 저로서는 (계속 회사에서 야근 행군 하다가 주말에 또 자발적으로 참여해 금토일 철야작업을 한) 이 행사가 오히려 리프레쉬가 되었습니다. 같이 일 하면서 팀원들에게 종민씨 참 대단한 것 같다. 매력적이고 탐나는 인재다 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금방 만에 인정 받는 것을 보면 나름 내가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자신감도 더 갖게 되었고요. (요즘은 근자감이 너무 높아 오히려 아내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ㅋ)
대기업의 특성상 개인이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하는 역량을 발휘 하기가 어렵고 지금 투입된 프로젝트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아 계속 관리자들이 개발자를 기계 부품마냥 개발이 급한 파트로 이리끼웠다가 저리끼웠다가 하는 것에 지쳐 있던 차에 스타트업 위크엔드를 하면서 리프레쉬 되는 것을 느끼고 나니 더 늦기 전에 결단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타트업 위크엔드에서 만난 K팀장님께 연락해 같이 만나 준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듣게 되었습니다. 듣고보니 벌써 준비도 많이 되어 있고 꽤나 매력적인 사업으로 느껴졌습니다.
서비스의 주 골자는 특정 영역의 빅 데이터를 분석 가공해서 금전적인 가치를 뽑아내는 일인데, 해외에는 비즈니스 모델이 있는데 국내에는 아직 없는 나름 블루오션 영역이고, 시장 조사를 해 본 결과 수익성이 꽤 된다고 판단이 됩니다. 지금 계획 하고 있는 대로 진행이 된다고 하면 안정화 후에는 지금 대기업에서 제가 받는 수입을 꽤나 웃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소기업청에 사업 제안을 해서 이미 투자 사업으로 선정이 되었고 프로젝트를 진행 하면서 필요한 예산을 지원 받을 수 있도록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신뢰성 있는 VC인 쿨리지코너와 지금 협약을 진행 중이며 올해 말 즈음 파일럿이 올라가면 내년에 괜찮은 규모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거기다가 또 저희 사업을 하려면 대규모 클라우드 서버가 필요한데 필요한 장비들은 나이파(NIPA)에서 1년간 무상으로 지원 받기로 했습니다. 나이파 업무 중에 자신들의 장비들을 사업에 이용하고 실적을 리포트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저희와 그 부분을 서로 윈윈 하여 같이 협력하기로 한 것입니다.
결국 제가 투자 해야 할 부분은 초반에 자금 투자도 필요 없고 단지 창업 멤버로서 기술 부분을 전담 하면서 서비스가 완성되어 돌아갈 때까지 열심히 시스템 만드는 재능 부분에 대한 투자 가 필요했습니다.
K팀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참 매력적이고 사업의 내용도 좋았지만, 매력에 느낀 포인트는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뿜어져 나오는 그분의 열정과 눈빛이었습니다. 제가 아직 사람 보는 눈이 많이 숙련된 것은 아니었지만, 일 끝나고 저녁에 만나 피곤한 상태였는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리고 듣는 동안 점점 호기심이 들며 피곤도 잊고 빠져들게 하는 것이, 그 분이 일에 대한 열정과 확신이 정말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한번 믿어볼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진행 해 볼까 나누었는데 이 부분도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사업을 하면 꼭 해보고 싶던 것을 이분도 동일하게 생각을 하고 계셨더군요. 저희가 같이 사업 하면서 지향하고자 하는 것은 오피스리스(Officeless), 그리고 페이퍼리스 (Paperless) 입니다.
일 하기 편한 곳이 사무실이고, 정보만 주고 받으면 그게 회의 자료라는 것. 자료 작성과 교환은 구글드라이브나 에버노트를 이용해서 하고 사무실은 일하기 편한 북까페나 토즈 같은 곳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미팅하다가 집중해서 빌드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콘도나 펜션 가서 며칠동안 워크샾 하면서 빌드 하고.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게. 이런식으로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SW 엔지니어는 하루에 몇시간 근무 시간이 주어졌다고 해서 정해진 양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집중할 때 집중하고 쉴 때 편하게 쉬는게 효율이 높다는거 저도 그분도 같이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원한다면 쿨리지코너나 정부에서 지원 해주는 스타트업 센터 같은 곳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굳이 사무실 셋팅 한다고 초반에 시간 보내고, 매달 월세랑 관리비 나가는 거 신경 쓰지 말고 아무데서나 편하게 한번 일해보자고 했습니다. 이것도 제가 사업을 하면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고, 실제로 지금도 이렇게 시작하는 젊은 스타트업이 많이 있습니다. 커피전문점 가보시면 3~5명이 컴퓨터 가지고 와서 하루 종일 작업하는 친구들이 간간히 보입니다.
계속 이야기를 하고 나니 같이 재밌게 시작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바로 합류를 결정했습니다. 마침 회사도 구조조정으로 어수선하고, 더 미루어지면 이제 새로운 일 하기 힘들 것 같다는 차에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되어 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제가 총 책임자로 기획하고 설계하고 빌드까지 하는 경험을 해 볼 수 있고, 대용량 빅데이터 시스템에 대해 열심히 공부해야 할 필요성도 있기에 지금 회사에서 하는 것 보다는 더 많은 내용을 책임감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나중에 저도 청소년 비전에 관한 제 사업을 또 할 것인데 (한 10년 뒤? 쯤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큰 금전적인 리스크 없이) 스타트업에 합류해서 해 볼 수 있는 이 경험들이 대기업에서는 절대 해 볼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인생에 있어서 잠깐의 한숨을 돌린 뒤 다시 새로 열심히 달려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힘차게 도약할 수 있도록 응원 부탁드립니다.